봄의 흙은 헐겁다 :: 자전거 여행(발췌)

2024. 8. 21. 13:30연근/읽은거리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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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/에세이, 자전거 여행
김훈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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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.14-16

 

'봄의 흙은 헐겁다. 

언 땅이 녹고 햇볕이 땅속으로 스며들어 흙의 관능은 노곤하게 풀리면서 열린다. 

봄에 땅이 녹아서 부푸는 과정들을 들여다보는 일은 행복하다. '


 

'겨울에는 봄의 길들을 떠올릴 수 없었고,

봄에는 겨울의 길들이 믿어지지 않는다.'


 

'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 동안이 매화의 절정이고,

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. '


 

'동백은 피어서 군집을 이루지 않는다.

개별자로 피어나는 그 꽃들은 제가끔 피어서 제가끔 떨어진다.

절정에서 바로 추락해버린다.

그래서 동백이 떨어진 나뭇가지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다.

문득 있던 것이 문득 없다.

뜨거운 애욕의 정념 혹은 어떤 고결한 영혼처럼.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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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.25

 

'풀싹들은 헐거워진 봄 흙 속의 미로를 따라서 땅 위로 올라온다.

흙이 비켜준 자리를 따라서 풀은 올라온다.

생명은 시간의 리듬에 실려서 흔들리면서 솟아오르는 것이어서,

봄에 땅이 부푸는 사태는 음악에 가깝다.'

 

 

 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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